왕십리 CGV는 특히나 제게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들린 영화관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들도 많이 겪었기 때문인데...
기억나는 몇 가지 썰만 간단히 풀어보려 합니다.
1) 상경 이후 처음 가본 영화관, 그리고 첫 아이맥스
때는 2009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살던 촌동네 꼬맹이였던 저는 대학에 입학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3인 1실 학교 기숙사에는 08학번 선배와 09학번 새내기 두 명이 배정되었지요.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 셋이서 의기투합해 친하게 지내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룸메이트 선배가 이 촌뜨기 둘에게 안암골 바깥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야! 이 동네가 어딜 봐서 서울이냐. 영화관도 하나 없는데...아, 우리 말 나온 김에 영화보러 갈까?"
그리하여 안암동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인 왕십리로 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때 본 영화가 바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왓치맨Watchman(2009)>이었습니다.
유명 원작 코믹스를 영화화한, 지금까지도 관객들에게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작품이지만. 저는 굉장히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특히나 태어나서 처음 가본 아이맥스 영화관의 쇼크는 굉장했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B열에 앉아 고개를 위로 쭉 빼들고 봤는데, 시야에 꽉 차다 못해 좌우로 빠져나간 화면, 귀청을 찢을 듯한 사운드(특히 인트로의 빌딩 격투 씬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귀가 얼얼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화면 밖으로 튀쳐나올 듯이 선명한 화면에 질겁했습니다.
"야, 내가 서울에 오긴 했구나!" 귀엽게도 이런 생각까지 했더랍니다 ㅋㅋ
그날은 영화를 보고 나와서 영화의 의미에 대해 셋이서 술을 마시며 토론하다가, 기숙사 통금 시간을 넘겨 안암동을 헤매고 돌아다녔던 추억도 있습니다.
이 날의 기억 때문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Avatar(2009)>는 아이맥스관 맨 뒷열에 앉아서 봤는데, 화면이 너무 작아서 당황했던 적도 있습니다.
2) 데이트는 실패해도 영화는 건져야지
대학 새내기 시절, 저는 여타 다른 쑥맥 남자아이들처럼 연애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는데.
1학년 때 두 번의 썸을 탔었습니다. 뭐 엄밀히 말하자면 제가 일방적으로 들러붙었던 거지만 ㅋㅋ...ㅠㅠ
두 번 모두 그다지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요. 그때 봤던 영화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데이빗 핀쳐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9)>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예약하고 영화를 보러 갔는데...아니 세상에 이럴수가.
영화가 100퍼센트 완전히 제 취향 직격이었던 겁니다.
썸녀고 뭐고 영화가 너무 좋아서 입을 쩍 벌릴 지경이었죠.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제 인생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들어갑니다.
영화를 얻은 대신 썸녀는 잃었지만요 ㅠㅠ
새내기 2학기. 두번째 썸녀와 보러 갔던 영화는 바로 이것, <지 아이 조G.I.Joe(2009)>입니다.
이 영화는 위와는 반대되는 케이스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너무 재미없었습니다.
썸녀랑 영화관 나와서 영화 욕만 한시간쯤 했던 기억이 있네요. 욕하는 게 더 재밌었을 지경.
결국 이 썸녀랑도 끝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0T
3) 지나친 애정행각은 자제해 주세요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ㅋㅋㅋㅋ 2010년 사귀게 된 여자친구와 또 왕십리 CGV에 갔습니다.
예 전편에 소개했던 5년차 여친몬이 바로 이 아가씨입니다.
한창 알콩달콩 핑크빛 무드이던 연애 초기에 보러 간 영화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드래곤 길들이기How To Train Your Dragon(2010)> 였습니다.
이때 좀 민망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영화 입장 시간을 기다리며 CGV 로비에 앉아서...여친몬이랑 둘이서 껴안고 둥기둥기 하트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연애 초기라 그냥 언제 어디서든 애정을 주체를 못하던, 참 눈꼴시린 커플이었는데...
한창 그러던 차에 직원이 한 명 다가오더니 정중한 목소리로,
"손님. 죄송합니다만 클레임이 들어왔습니다. 그...애정행각은 좀 자제를..."
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기억입니다.
직후 저희 둘은 무척 부끄러워하며 영화관 안으로 달려 도망쳤습니다.
여자친구와 왕십리 CGV에 올 때마다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폭소하곤 했습니다.
4) 제대, 복학, 자취방
군 제대 후 복학을 하고 자취방을 잡았는데, 이게 또 우연찮게 왕십리 바로 근처입니다.
지금도 그 방에서 살고 있는데요.
왕십리 CGV까지 슬렁슬렁 걸어도 20분이면 도착합니다.
한가할 때면 혼자 심야영화를 보러 가서, 인적 한산한 영화관에 편히 앉아 영화를 보는 게 일주일의 낙이 되었지요.
요즈음은 바빠서 또 못 가고 있지만...
방학해서 시간이 나면 또 매일같이 들락거리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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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와서 여기저기 영화관을 많이 돌아다녔지만
특히나 추억도 많고 돈과 시간도 왕창 쏟아부운 CGV 왕십리점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특별히 자주 가는 영화관이 있으신가요?
영화뿐만이 아니라 그 영화를 본 환경을 같이 기억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감상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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